various stories
영화배우 “톰 크루즈”의 인생사 - 세 번의 결혼과 이혼
Nicky Mouse ・ 2018. 12. 7. 2:37
URL 복사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신고하기
톰 크루즈의
얼굴 변천사
(ft. 동안)
(영상출처: 유튜브)
1962년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난 “톰 크루즈”는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고
그 후 미국과 캐나다를 전전하며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등, 결코 풍족한 가정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고교시절에는 레슬링에 열중했지만 심한 부상을
입은 후 운동하는 일을 단념하게 되고 연극부에
들어갑니다.
그 곳에서 연기에 눈을 뜬 톰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배우가 되는 것을 목표로 뉴욕으로 건너가게
되고 마침내 1981년, 영화 “엔드리스 러브”의
오디션에 합격하며 단역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맷 딜런”과 함께 출연한 영화 “
서서히 두각을 나타낸 그는
1983년에 개봉한 영화 “
치게 되고 톰은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상에도
첫 노미네이트 됩니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는 톰 크루즈가 와이셔츠만
입고 립싱크를 하며 춤추는 장면이 유명한데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각종 TV 프로그램
에서 패러디되거나 할로윈 코스프레 등에서
필수요소로 등장하며 심지어 호머 심슨도 이것을
패러디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여배우
“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일약 톱스타로 끌어올린 것은
전세계적인 대히트작이었던 영화 “
이었는데요, 극중 조종사들이 입고 있던 플라이트
재킷이 유행하는 등, 아시아에서도 큰 붐을
일으켰습니다.
배우로서 큰 성공을 거든 톰은 그 이듬해 자신보다
6살 연상의 여배우 “미미 로저스”와 결혼합니다.
단정한 외모를 지닌 아이돌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톰이지만, 1988년에 개봉한 영화 “
이후부터는 연기파로서의 일면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쉽게도 톰은 노미네이트(minate)를 놓쳤지만,
영화 “레인맨”은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톰 역시 자폐증이 있는 형을
가진 자유분방한 청년의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1989년에 개봉한 영화 “
전쟁의 후유증에 괴로워하는 병사 역을 연기하기
위해서 약 1년간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등,
배우로서의 노력과 근성을 보여 최초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같은 해에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도 “
"
노미네이트 되기도 합니다.
그 무렵, 톰은 1990년에 개봉한 영화 “
오브 썬더”에서 함께 출연한 니콜 키드먼과
사랑에 빠집니다.
톰은 미미 로저스와 이혼한 후 니콜과 재혼해서
이사벨라와 코너를 입양합니다.
1996년에는 "
도전하는데 이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치게되자 톰은 그 이후 수많은 작품들의 제작을
맡습니다.
2006년 "M:i:III"에서는 당시 , 영화 감독으로서는
신인이었던 “
하는데 “에이브럼스”는 새로운 스타워즈의
감독으로 결정되는 등, 현재 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고 그가 지금의 위치가 되기
까지 톰의 역할이 컸다는 것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외에도 “뉴스의 천재”
(2003), “엘리자베스 타운”(2005) 등, 자신의
출연작 이외에도 제작을 맡았습니다.
2001년에는 전부인이었던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같은 해 개봉한 영화
“
“페넬로페 크루즈”와 사랑에 빠지면서
니콜키드먼과는 이혼합니다.
관련기사
(출처: 씨네21)
2005년 케이티 홈즈와의 열애가 세간에 알려졌을
2005년에는 여배우 “케이티 홈스”와 교제를
시작하는데 두 사람은 연애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곧바로 약혼발표를 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당시,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케이티를 사랑한다며
소파에서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되었는데,
톰의 지나치게 흥분한 모습은 사이비 종교인이라는
점과 맞물려 조롱거리가 되면서 이미지 하락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이 사건에서 유래해 누군가가 지나치게 흥분해
날뛸 때 쓰는 관용어 “
생겨났을 정도였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의 소파 점핑 사건 때문에 톰이 믿고 있는 종교인 사이언톨로지 교리에 이후 문제의 산후우울증 발언에 대해 톰은
구설수에 오른데다 동료배우였던 “브룩 실즈”가
산후우울증 때문에 약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을 해서 톰은 안 그래도
좋지않았던 이미지가 더욱 하락해 버리는 계기가
됩니다.
따르면 자연요법을 쓰지 않고 약을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하는데, 톰의 발언 요지는
약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실즈는 그런
인식 때문에 약을 복용않고 상태를 악화시키는
임산부들이 많다며 반론하기도 했습니다.
브룩 실즈에게 사과했다고 밝혔으며, 실즈도
톰과 자신이 화해했다고 말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잣대로 남을 비난했던 일은 정말 큰 잘못이었다고
언급하며 이후 참석한 바버라 월터스 토크쇼에서
“더 이상 사이언톨로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톰은 2011년 이후로 매년 1편 이상 대규모
그러던 중, 2006년에는 케이티와의 사이에서
첫 딸인 수리가 탄생하지만 한번 떨어진 호감도는
다시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파라마운트 영화사로부터 “최근 일어난 그의
말과 행동은 우리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며
오랜 기간 지속해 온 계약을 중지시켜 버립니다.
뒤이어 개봉한 영화 “로스트 라이언즈”(2007)와
“나이트&데이"(2010)도 흥행에 실패하며
이대로 톰의 시대는 끝나가는 것으로만 보였습니다.
예산을 투입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이 영화들이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영화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배우로서의
그의 인지도와 지위는 대단한 수준이라 할 수 있고
또한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해외스타 중 한 명이라는
인식 때문에 국내에서의 톰 크루즈의 이미지 또한
지속적으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톰 크루즈의
결혼과 이혼
첫번째 부인 “미미 로저스”
두 사람은 1989년에 결별하고 이듬해인 1990년에
젊었을 때 연상의 여성과 교제하던 톰은
1987년 6세 연상의 여배우인 “미미 로저스”와
결혼합니다. (당시 미미 로저스는 재혼)
1987년 5월, 결혼 당시 톰은 24세, 미미는 31세.
이혼을 하는데 톰에게 사이언톨로지를 소개한 것은
미미 로저스로 전해집니다.
두번째 부인 “니콜 키드먼”
그는 키드먼과 영화 《폭풍의 질주》에서 처음 크루즈와 키드먼 사이에 친자녀가 없는 이유에
1990년 초 톰은 첫 부인 미미 로저스와의 이혼하고
같은 해 12월, 당시 호주 연예계에서 할리우드로
막 진출한 신인 여배우였던 니콜 키드먼과
재혼합니다.
결혼 당시 톰은 28세, 니콜은 23세.
만났는데 여주인공 오디션에 응한 키드먼에게
크루즈가 첫눈에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로저스와 이혼을 감행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혼을 원치 않았던 로저스는 톰의 사생활을 종종
언론에 폭로하기도 했는데 결혼 후 톰과 키드먼은
두 아이를 입양해 키웁니다.
대해 여러 루머가 있었습니다.
불임이라는 설이 대표적인데 특히 크루즈가
무정자증이라는 보도를 독일 매체에서 하면서
한때 정설처럼 굳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니콜 키드먼이 2007년에 잡지 마리 니콜 키드먼과 결혼한 이후 1990년대 헐리우드를 이것은 당사자들 모두 공식적으로 이혼 사유에 뿐만 아니라 키드먼 측에서는 갑자기 이혼 소송을
클레르와의 인터뷰에서 크루즈와 결혼 생활을
할 때 두 차례 임신했으나 모두 초기에 유산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톰과 키드먼 모두 이혼 후
새 배우자와 친자녀를 낳으면서 불임 루머
대부분은 불식된 상태입니다.
주름잡는 대표적인 스타 커플로 통했으나
2001년에 이혼을 발표하여 10년이 조금 넘는
결혼 생활을 끝냅니다.
이혼사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성 설이
난무한데, 사이언톨로지를 신봉하는 크루즈
때문에 종교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는 설,
크루즈가 《바닐라 스카이》를 찍다가 함께 출연한
페넬로페 크루스와 외도를 저질렀다는 설,
3년 넘게 《아이즈 와이드 셧》을 촬영하는 도중에
둘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는 설, 키드먼이 자신이
크루즈의 그늘에 가려있다고 생각하여 헤어지기로
결심했다는 설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이 중
확실시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대해서는 함구하고 넘어갔기 때문인데 다만
이혼 소송은 크루즈 측에서 제기했기 때문에
톰이 심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법에 따르면 결혼 기간이 12년이
넘어가는 부부는 이혼할 때 무조건 50:50으로
재산 분할을 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크루즈가
12년이 되기 직전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는
추측이 대세였기 때문입니다.
당한 거라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한데다
이혼 즈음에 키드먼이 두 번째로 임신했다가
유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때문에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키드먼은 《물랑 루즈》 촬영 당시에 함께
출연했던 이완 맥그리거와 외도설이 났었는데
이게 한때 이혼 사유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톰과 니콜은 이혼 후에도 서로를 비난하는
일 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이혼 후에
키드먼이 고향인 호주로 돌아가면서 함께 입양했던
이사벨라와 코너는 실질적으로는 톰이 자신의
누나들과 함께 키웠으나 니콜 키드먼 역시
정기적으로 아이들과 교류해오고 있습니다.
키드먼이 두 번째 남편인 키스 어번과 첫 딸
선데이 로즈를 낳았을 때 크루즈가 축하한다며
선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2015년 초에 HBO에서 방영된 사이언톨로지
다큐 'Going Clear'에서 사이언톨로지에서
탈퇴한 전 간부가 《아이즈 와이드 셧》 촬영 당시에
크루즈가 키드먼의 행적을 의심하여 도청을
명령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키드먼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한 직후에 영화
그러나 진위여부는 파악되지 않았으며 실제로
사이언톨로지 측에서는 저 폭로에 대해 바로
부인하는 등, 진위 여부가 확인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바닐라 스카이》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페넬로페 크루스”와 교제합니다.
2001년에 크루즈는 《바닐라 스카이》 프로모션차
세번째로 내한했는데 이때 크루스와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동아일보)
그러나 톰 크루스의 어머니, 그리고 키드먼과
입양한 자녀들의 반대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집니다.
세번째 부인 “케이티 홈즈”
그리고 2006년 4월 18일에 홈스는 첫 딸인
2005년 4월부터 16살 연하인 후배 여배우
“케이티 홈즈”와 열애하게 되고 여담이지만 이때
홈스가 크루즈의 오랜 팬인 것이 알려져 홈스에게
세간의 부러움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이사벨라와 코너 역시 홈스를 어머니로 대우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러다 2005년
말에 홈스가 임신했으며 크루즈가 그녀와
약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수리 크루즈를 낳았습니다.
2006년 11월에 크루즈는 자신이 소유한
이탈리아의 고성에서 사이언톨로지 식으로
홈스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립니다.
많이 성장한 수리 크루즈의 현재 모습
행복하게만 보였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도 2012년
7월, 케이티 홈즈와의 이혼을 발표하면서 그들은
결국 헤어지게 되는데 키드먼과 이혼했을 때처럼
정확한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는 공식 발표만이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크루즈가 수리를 사이언톨로지식으로
교육시키려 하고 사이언톨로지 측에서도 유력한
신도인 크루즈의 유일한 친자 수리까지 교도로
끌어들이려 하자 홈스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사이언톨로지 교도인 남편과 이혼했다는 설이
정설처럼 돌기도 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루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연이겠지만 크루즈와 결혼했던 세 전부인 모두 수리는 케이티 홈즈가 키우되 크루즈는 언제든
33살일 때 이혼했고 결혼할 때마다 아내가
11살씩 젊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케이티 홈즈와의 이혼은
빠른 합의로 조속히 마무리되었습니다.
홈스가 이혼 소송을 제기했을 때부터 외동딸
수리의 양육권은 누가 갖게 되는지 세간의 이목이
쏠렸는데 결국 7월 17일에 이혼 합의서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수리와 영상통화를 할 수 있으며 각종 기념일이나
명절에도 같이 지내는 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단 사이언톨로지 이야기는 절대 금지이며
상대방에 대한 험담도 절대 금지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국과의 인연
톰은 현재까지 총 9번 한국을 방문했는데, 방한시
매우 친절한 팬 서비스를 하기로 유명합니다.
일례로 미션 임파서블 4를 홍보하기 위해
내한했을 때에는 그를 보려고 몰려든 팬들이
배우들이 지나가는 길 옆 거의 백 미터에 걸쳐
늘어서 있자,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며
지나가느라고 백 미터쯤 되는 거리를 한 시간은
걸려서 갔다는 어느 목격자의 후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실하게 팬 서비스를 해주는데도
스케줄에 문제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걸리는
시간도 고려해서 스케줄을 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외국 배우 방한시 성공하기 힘든 공항어택
(공항으로 오는 스타들을 직접 만나서 사진을
직접 찍거나 사인 등을 요청하는 것)도 척척
잘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있는 배우입니다.
(이 별명엔 본인도 만족했다고..)
2009년 《작전명 발키리》로 내한했을 때 그를
기다리는 팬들에게 두 시간 가까이 일일이
사인해주는 팬 서비스는 한국의 영화 팬들에겐
일종의 문화충격이었습니다.
이전까지 고고한 한국 영화배우들에게서 볼수
없었던, 팬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팬 서비스의
모습으로 인해 이후 한국 영화배우들이 팬들을
대하는 자세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댓글8 이 글에 댓글 단 블로거 열고 닫기
인쇄